터키 배낭여행 정보(2)

조회수 11972 추천수 0 2009.01.02 11:22:03
 

터키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본 이스탄불


터키 배낭여행 정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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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절차 ①여권-여권 잔여기간이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②비자-체류기간이 3개월 미만일 때는 비자가 필요 없다.

                  ③입국카드-입국카드는 기록하지 않는다.


비행시간과 시차

  ①비행시간-한국 인천 공항에서 터기 이스탄불까지는 11시간 40분 걸림

  ②시 차 - 터키가 한국 시간보다 7시간 늦다.

               섬머타임 실시기간(3월∼ 10월)에는 6시간 늦다.

 

관광할 때의 복장 - 기후에 맞추어 간편한 옷은 입되, 여름철에 자미(모스크건물)나 종교 시설물을 관람할 때는 반소매와 팔없는 옷을 입고는 입장할 수 없다. 여름철에도 버스 안은 에어컨시설이 잘 돼 있어 추우므로 겉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화장실과 식수

①화장실-공중화장실, 버스터미널이나 휴게소의 화장실은 대부분 유로로 잔돈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식수-수도물을 그대로 마실 수 없으므로 미네랄 워터를 사서 마셔야 한다. 500m에 500원 정도이다.


전압 - 220V에 50Hz.  플러그의 구멍은 2개로 돼 있다.


- 터키에서는 팁을 주는 관습이 없다. 다만 레스토랑과 호텔 등에서는 요금에 서비스료가 포함되어 있다. 고급호텔은 10%, 벨보이나 룸서비인에게는 1 YTL=약 750원(한국돈)정도 팁을 주는 경향이 있다.


도량형 - 미터법을 쓰고 있다. %를 쓸 때는 숫자 앞에 %를 넣는다.

 

신변안전의 유의점

①공항버스를 탈 때 말을 걸어오는 사람에게 빠지면 고액의 카펫트를 강매당할 수 있다.

음식물에 수면제를 넣어 금품을 갈취당할 수도 있으니 수상한자의 친절에 속지 말 것.

③악덕 택시나 가짜 경찰에 속지 않도록 한다.

④구급차의 번호는 122번이고 경찰신고는 155번이다.

⑤한국인 배낭여행객이 최근 이스탄불에서 사망했다. 배낭여행객은 어디서나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터키 정부는 “관광객 안전 확보를 위해 더 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말고, 혼자 외진 곳을 다지니 말고,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경계하고, 히피 스타일의 눈에 띄는 복장을 피해달라”고 당부했다.


국제전화  <터키→한국>의 경우 

 00(국제전화 식별 번호)+82(한국 국가번호)+상대방전화번호(지역번호의 0을 뺀 번호) 

 예) 00-82-2-886-1234


한국 대사관 전화 번호    (0312)-468-4821∼2   또는  (0312)-468-2279


현지 물가 - 신문 us$0.2   샌드위치 us$1∼3    생수 us$0.5   코카콜라 us$0.8

                      맥주(0.5ℓ) us$07∼1


터키 여행의 기본 모델 루트

①8일형=이스탄불>카파도키아>파묵칼레>에페스>이스탄불

②10일형=이스탄불>카파도키아>파묵칼레>에페스>안탈야>보드룸>큐샤다스>이즈미르>체쉬메


영업시간-라마단 기간에는 일몰까지 영업하는 경우가 많다.

  [은 행]   평일  08:30∼12:00  13:30∼17:00  휴일은 토․일요일과 공휴일

  [박물관]  평일  08:3008:30∼12:00  13:30∼17:0017:00  월요일은 휴관

  [백화점과 상점] 09:30∼19:00 

  [레스토랑] 09:00∼23:00(라마단 때는 영업 안함)


열기구 타기 - 카파도키아에서는 열기구 투어를 꼭 타볼 것 1인당 200달러로 부담스런 가격이지만, 열기구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돈 생각은 싹 사라진다. 투어는 오전 6시 30분 이륙해 한 시간 정도 진행된다. 자세한 정보는 www.goremeballoons.com


쇼핑 팁 - 쇼핑할 때 무조건 깎어야 된다. 70% 정도에 싸면 손해보지 않는 셈이다. 50%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신 서두르면 된다. 탁월한 장사꾼인 터키인들은 흥정을 즐긴다. 가게주인이 내주는 터키 홍차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흥정한다.


한글 안내서 - 터키 여행 한글 안내서 17종을 터키정부에서 최근 냈다. 터키항공 한국지사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다. (02)757-0280


터키의 공동목욕탕=하맘

이슬람의 경전에 “청결은 신앙의 절반”이라고 명기되었듯이 터키인은 몸의 청결을 중시하여 하맘이 고대로부터 발달했다. 때밀이 서비스와 마사지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

입구에 요금표와 서비스 내용이 기재돼 있어 서비스 내용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고 안내원을 따라 개인실로 들어가고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타월을 허리에 두르고 (여성은 비키니를 입는 것이 좋다.) 열쇠를 갖고 욕조로 들어가서 때밀이와 마사지를 받으면 된다. 때밀이를 케세지라 하는데 목욕탕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있지만 호텔에서는 여성케시지는 없다. 서비스를 다 받고 개인 휴게실에서 휴식하며 차이와 주스를 마신 후 나오면 된다.


터키의 춤

①밸리 댄스-많은 전문가들은 벨리댄스가 동방으로부터 인도와 중동 지역에 걸친 고대 문명에 근원을 둔 가장 역사가 깊은 춤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벨리댄스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남자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춤이라는 점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벨리댄스는 다른 여성들, 즉 다산 기원식 또는 결혼하는 젊은 여성을 위한 파티에서 의례적으로 행해져 왔다.
벨리댄스는 다리나 발보다는 신체의 중심부로부터 퍼져나오는 동작으로, 여성의 뼈와 근육 구조에 적합하다. 신체의 각 부분을 분리시키는 동작이 자주 사용되는데, 각 부분을 감각적인 모양으로 독립시켜 움직이거나 여성적인 동작으로 엮는다. 주로 맨발로 공연하는데, 이는 댄서, 댄서의 표현 그리고 모체인 대지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간주된다. 벨리댄스 의상은 주로 색상이 다채롭고 하늘거리며, 하늘하늘한 스카프와 베일로 강조된다. 핑거 심벌(Finger cymbal, 놋쇠 재질이고 Zill 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다)은 기원전 2세기 전부터 보편화되었으며, 가족의 부를 의미하여 긴급하게 대피하거나 이동할 수 있도록 동전을 달아 복잡하게 만든 벨트 역시 주요 장신구이다.

세기가 바뀐 이래로, 벨리댄스 인구는 전세계적으로 급증해 왔다. 벨리댄스 축제, 워크샵과 세미나가 계속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많은 남성과 여성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②민속무용-오윤<야쿠트 족의 ‘오윤(Oyun)>

③흑해 연안의 호론-복잡한 스탭의 춤으로 리듬은 7박자,9박자로 돼 있다.


터키의 국경일

  신년 공휴일 : 1월 1일           

  쿠르반바이람 : 2월 2일∼5일(2004년, 해마다 다름)

  독립기념일, 어린이날 : 4월 23일 

  아타뒤르크기념일, 청소년의 날, 스포츠의 날 : 5월 9일

  스승의 날 : 8월 30일

  공화국의 날 : 10월 29일

  세게르바이람 : 11월 14일∼16일(2004년, 해마다 다름)

 


터키의 에페소 유적지
 
 

               중요 관광도시 소개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위치한 이스탄불은 2000년이 훨씬 넘는 그 역사에 걸맞게 아주 자연스럽게 동서양 문화와 상업의 교류지로서 역할을 다하여 왔다.

세계를 지배한 3대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제국의 수도이기도 했었던 이 곳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곳곳에 과거 번영의 흔적들을 보존해놓고 있음으로서 생생한 역사의 장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200만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도시로서의 면모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고, 또한 서양과 동양의 절묘하게 조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묘한 신비가 깃들어 있는 도시라고 하겠다.

이스탄불이 세계적인 국제 도시로 발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데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바로 보스포러스 해협이기 때문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해협으로 흑해의 자원들이 서방으로 나가는 경제적 지름길이다.

지리적으로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눠지기 때문에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유일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동쪽의 아시아 지역은 대부분 주거지역이 되고 서쪽의 유럽지역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된다.
유적지가 모여있는 곳은 구시가지인 술탄 아흐멧 지역은 유럽 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로마/비잔틴/오스만 제국의 궁전과 교회가 모두 이 지역에 몰려있다.


이스탄불"의 평균적인 기후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평균기온(°C)

5.6

5.7

7.0

11.4

16.0

20.7

23.3

23.4

20.0

15.6

11.6

8.2

최고기온(°C)

7

8

10

15

20

25

27

27

24

19

13

10

최저기온(°C)

2

2

4

8

12

16

18

19

16

12

8

5

평균강수(㎜)

93

71

58

43

30

22

17

15

27

53

88

101

 

데니즐리(Denizli) 

인구 24만의 중소도시인 데니즐리는 북동쪽으로 19km 떨어진 인근에 유명한 온천 휴양지인 파묵깔레가 있어 연계 관광도시로서 중요하다. 
데니즐리는 뷔윅 멘데레스(메안데르)강 근처에 있으며 높은 산들에 의해 파묻혀 있다. 신록이 우거진 계곡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운 자연 환경은 이 도시의 문화와 역사 또한 풍부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 도시 최초의 주민은 루비아인이었지만 몇 세기가 지나서는 히타이트인이 살기 시작했다. 이 비옥한 토지는 몇 세기에 걸쳐 프리기아, 리디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 등 수 많은 문명을 지탱해 왔다. 현재 데니즐리는 넓은 도로에 공원과 호텔이 잘 정리된 도시이다. 시 중앙에 있는 아타튀르크 민족학 박물관에는 민예품과 공예품이 전시되어 있다. 쇼핑을 즐기기에 좋은 칼레이치 차르쉬스에는 토산품으로 구리제품과 보석, 타올, 실크브라우스가 있다. 참르크 공원과 인지리프나르 공원, 괴크프나르 공원에서는 피크닉도 즐길 수 있으며 소나무 숲 그늘을 산보해 보는 것도 좋다. 기분 좋은 샘물과 온천도 인기를 모으로 있다.
<텍스트 및 사진 자료 제공 : 터키관광청>


수도 앙카라

중앙 아나톨리아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는 앙카라는 터키의 수도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술탄제(술탄=황제)를 폐지하고 터키 공화국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urk)는 전까지 터키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을 제치고 앙카라를 수도로 정했다. 
앙카라의 주위에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히타이트(Hatti)문명의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B.C 2000년경 앙카라의 주인은 히타이트인들이었다. 그 뒤로 이곳은 프리지아인(Phrygian)과 리디아인(Lydian) 그리고 페르시아인(Persian)들로 차례로 주인을 바꾸어 갔다. 그러다 B.C 3세기에 와서 갈라디아 사람들이(Galatian) 이곳을 그들의 수도로 정했다.
그 때 앙카라는 앙키라(Ancyra)라고 불리웠다. 앙키라의 뜻은 “닻”이다. 이 앙키라는 그 후 로마인들과 로마인 이후에는 비잔틴인들에게 지배당하였다. 그러다 1079년 셀주크 투르크가 앙키라를 점령하였으며 그 후 이곳은 1402년까지 약 3세기동안 셀쥬크 투르크에 의해 지배된다. 그 후 오트만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오스만투르크가 지배하게 된다. 이 지배는 독일편에 서서 1차세계대전을 치루어 국가의 독립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1922년 11월 케말 아타튀르크가 술탄제를 없애고 공화국을 세울 때까지 지속된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1923년 10월 13일에 앙카라를 새로운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의 수도로 선포한다. 이 도시는 이때부터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신시가지와 수 천년 동안 시가지를 이루었던 구 시가지로 나뉘어진다. 이 신 시가지에 케말 아타튀르크의 묘가 있다. 이 묘는 10년 동안의 공정기간이 걸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장려한 묘이다.
구 시가지는 성채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 내부에 있는 12세기에 지어진 Alaeddin Mosque은 셀쥬크식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것은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구시가지 내에는 많은 전통 터키가옥들이 남아 있다. 몇몇은 아트 갤러리나 멋진 레스토랑등으로 쓰이고 있어서 앙카라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아름답게 재 단장한 예전의 바자르는 앙카라의 성채로 들어가는 문 근처에 있다. 이 건물은 현재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로마,푸리지아,히타이트 그리고 구석기 시대까지의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연다.  


고대도시 에페소

에페소는 기원전 1500-1000년 사이에 처음 세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테네 왕자 안드로클로스(Androklos)의 지휘 하에 그리스의 이주민들이 아나톨리아에 처음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가 현인들에게 그들의 새 도시가 어디에 세워질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현인들이 예언하기를 야생 멧돼지 한 마리와 물고기 한 마리가 그들을 새 도시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야외에서 안드로클로스가 생선을 굽다가 그 중 한마리가 팬에서 미끄러져 가까운 숲속으로 떨어졌고 이와 함께 튄 불똥이 숲에 번지자 사나운 멧돼지 한 마리가 불을 피해 뛰쳐나왔다. 예언자들의 말을 기억한 안드로클로스는 도망치는 멧돼지를 쫓아 죽이고 바로 그 자리, 즉 아르테미스 신전에서 서쪽으로 1200미터 떨어진 고대 에페소가 있던 곳에 그들의 새 도시를 세웠다. 기원전 7세기, 에페소는 키메르(Cimmerian)인에 의해 아르테미스 신전을 포함하여 완전히 파괴되었고 이후 이곳은 그리스의 참주들에 의해 다스려졌다.

기원전 6세기경 에페소는 리디아왕국의 군주 크로이소스(Croesus)의 지배를 잠시 받긴 하였으나 곧 페르시아에 정복되었고 다시 알렉산더 대왕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가던 알렉산더 대왕은 크로이소스에 의해 재건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이곳을 정복, 에페소는 평온을 되찾고 융성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리시마쿠스(Lysimachos)는 피온산(Mt.Pion)과 코레쏘스산(Mt.Koressos) 중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이곳을 높이 10미터, 총 길이 9Km의 성벽으로 요새화시켰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원형극장, 경기장과 체육관 등의 유적은 이 당시 지어진 것이다.

기원전 88년, 에페소인들은 폰터스(Pontus)와 연합하여 로마인들에게 대항하였으나 로마의 세력 팽창이 엄청날 것을 알아차린 에페소인들은 곧 로마편으로 돌아섰다. 이로써 에페소는 로마의 동맹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로마제국 아시아속주의 수도로 부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거대 항구가 있는 아시아 무역항로의 종착지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번영도 서기 17년에 일어났던 대지진으로 한순간에 무너져 폐허로 변하였다.

교회 역사에서 에페소는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제자 사도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도요한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바울로 인해 복음이 왕성히 전해지고 있다는 에페소로 오게 되었다. 에페소에 도착한 요한과 마리아를 위하여 에페소 성도들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이후 바오로 2세가 성모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여 신성하고 중요한 곳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곳은 카톨릭교회의 성지로 지정되었다


<일리아드>의 배경 트로이(Troy)

트로이 유적은 에게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있는 평야를 내려다보는 히살리크 언덕위에 있다. 이러한 지리학적 위치는 바다와 너무 근접하여 침입의 위협을 받지도 않으며 너무 멀지도 않아 교역의 어려움도 없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기에는 매우 적합하다. 그래서 트로이는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인간이 살기 시작했다. 지금의 트로이는 호머의 일리아드로만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는 과거 여러 문명이 거쳐갔던 중요한 도시였던 것이다. 이는 독일의 백만장자이자 고고학자였던 슐리만에 의해 파해쳐진 9개 층에 이르는 유적에 의해서 증명된다. 슐리만은 독일에서 목사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어릴 적 아버지가 들려주시던 일리아드 이야기를 믿으며 언젠간 꼭 트로이를 찾겠다는 신념을 다지며 자수성가 하여 중년에 이르러서는 백만장자가 된다. 돈이 모이자 슐리만은 바로 트로이를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1870년에 발굴에 들어가 슐리만은 1871년에 트로이 유적을 발견하게 된다. 3년에 걸친 발굴로 인해 슐리만은 엄청난 양의 유물을 발견한다. 그 때 보물상자도 발견하게 되는데(이 때 발견한 보물상자는 트로이보다 1000년 전의 유물이다.) 이 상자에는 16000여개의 금붙이로 만든 왕관까지 있었다. 이 유물들은 슐리만이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독일로 가져와 그의 사후에 박물관에 기증하나 1945년 독일로 진주한 소련이 탈취하여 지금은 러시아에 있다. 초기 발굴에서 슐리만은 자신이 발견한 9개 층에 달하는 유적 중 2번째 층이 트로이 유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후에 밝혀지듯이 트로이 유적은 6번째 층이다. 밝혀진 트로이성은 일리아드에 나와 있듯이 견고하고 튼튼한 성이었다.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그 당시의 무기체계로는 쉽게 공략 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트로이 유적들은 발굴해 본 결과 대규모 지진으로 뒤틀려 있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길 트로이의 10년 전쟁은 지진으로 인한 성벽의 붕괴와 도시의 파괴에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한다.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지진의 신인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것이 말인 연유에서 비롯된 전설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트로이를 받치고 있는 평야에 서서 메넬라우스군이 되보기도 하고 트로이 성곽 위에 서서 헬렌을 차지하기 위해 10년 전쟁을 한 파리스 왕자가 되보기도 할 수 있는 트로이는 1998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트로이의 목마 전설과 트로이목마 바이러스
컴퓨터 바이러스중 트로이 목마라는 이름의 바이러스가 있는데 과연 트로이 목마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트로이의 성밖에 만든 큰 목마이다.
전쟁은 두 나라사이의 비슷한 전투력과 트로이의 강력한 요새로 인해서 끝나지 않고 있었는데, 이때 즈음하여 그리스는 선물이나 되는 듯 큰 목마를 성문앞에 만들고 마치 후퇴하는 것처럼 트로이를 떠난다.
트로이사람들은 이런 그리스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목마를 만든 이유를 알기위해 점술사를 불러 물어본 결과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으면 그리스에 재앙이 임하고 성밖에 방치해 두면 트로이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해석 때문에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군이 배를 철수한 후, 견고한 요새의 문을 열고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는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그리스의 작전이었다.
큰 목마안에 그들의 군사를 잠입시켜두고 점술사를 매수하여 난공불락의 트로이의 성벽을 넘고자 하는 전술이었던 것이다.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전의 축제를 벌이고 곤히 잠든 트로이 주민들에게 목마 속에 잠입해 있던 그리스 군인들이 나와 성문을 모두 열고, 후퇴하던 그리스 군사들이 모두 돌아와 결국 트로이는 점령당하고 만다.

마치 무슨 선물이라도 되는 듯이 보이는 메일을 열어보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일들이 종종 있는데, 그래서 그런 종류의 바이러스를 우리는 이 전설에 빗대어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호머의 고향! "이즈미르"

호머의 고향이기도 한 이즈미르는 "에게해의 진주, 아시아의 사랑, 아시아의 꽃, 아시아의 면류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과거에는 로마황제를 찬양하기 위해 최초로 황제신전을 세우기도 했던 로마에 대한 충성심이 유달리 높았던 도시였다. 현재 터키의 3대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한 이 도시는 터키에서 두 번째 가는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는 부드럽게 휘어지는 해변을 따라 잘 정돈된 도로들과 푸른 공원들이 늘어서 있어 그 정취가 각별하다. 온화한 기후에 많은 고급 호텔들이 있으며 상업과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에게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가장 잘 살린 도시인 것이다. 에게해의 맑은 바닷물이 곱게 포개지는 끝없는 해안선은 올리브 나무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원시해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 해변은 사람들에게 목가적인 낚시터이자 고대문명의 잔존처이며 그리고 매혹적인 집회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 "콘야(Konya)"

예전에 이고니온이라 불렸던 콘야는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였으며 현재는 520,000명의 주민이 사는 터키 중요도시 중 하나이다.지중해로부터 250KM, 흑해로부터는 500KM, 수도인 앙카라에서는 남쪽으로 250KM가 떨어진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로 해발고도가 1000M에 달해 콘야는 고원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콘야의 경제적인 기초는 카펫과 가죽의 생산이다. 그 외에는 광물 산업정도가 있다. 콘야는 11세가 셀주크터키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 이 때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콘야로 몰려들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많은 역사적인 경관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메블라나 박물관과 마나레 신학교는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콘야는 몇 년 전만해도 보수적인 메블라나교의 영향력으로 여자들은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도록 스카프를 써야 했다. 하지만 2002년 현재에는 스카프를 쓰지 않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 할 정도로 개방되어 있다.


하얀 솜으로 이루어진 듯한 파묵깔레

파묵깔레는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산물이다. 지면에서 뿜어 나온 석탄 성분을 포함한 섭씨 35도 온천수가 100m 높이에서 산 표면으로 흘러나와 많은 수영장을 만들었다. 온천수가 수영장에 흘러 넘쳐서 크림색의 종유석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세계에서 둘도 없는 경관을 만들었다. 목면을 뭉쳐놓은 듯 보이는 환상적인 경관으로 인해 파묵깔레는 목면의 성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데니즐리에서 19km 떨어져 있는 이 신기한 토지에서는 심장병,순환기 질병,고혈압,신경성 장애,류머티스,눈과 피부의 질병,신경과 육체의 피로,소화기 질병,영양 장애에 효능이 있는 온천이 풍부하게 나오고 있다. 이곳으로 오는 도로변에는 쿄우티쿠투가 울창하게 늘어서 있으며 휴양지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사람들을 느긋하게 만들어 준다.
파묵깔레는 석회붕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적인 경관과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풍부한 볼거리가 절묘하게 조합된 곳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절로 느낄 수 있는 곳 - 카파도키아(Cappadocia)

터키의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300Km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카파도키아. 마치 동화 속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갖갖이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들이 드넓은 계곡지대에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이 곳에서는 터키의 다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북적거리는 시장이나 양파모양의 사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카파도키아의 참 매력은 좀 더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원뿔을 엎어 놓은 듯한 용암층 바위 속에 이 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삶의 터전을 마련해두고 있는 것이다.

수백만년 전, 활화산이었던 예르지예스산(3917 m) 등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인해 형성된 이 곳의 지형은 오랜 세월을 걸쳐 풍화, 침식 작용을 일으켜 부드럽고 쉽게 깎이는 습성을 지닌 응회암지대로 바뀌게 되었다. 바위를 깎아 만든 이들의 거주 공간은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할 수 있음과 동시에 데린구유라고 불리는 지하도시와 마찬가지로 쉽게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종교탄압 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훌륭한 피난처가 되었다. 이러한 응회암 집의 입구는 지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옮길 수 있는 사다리나 밧줄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지형은 이 지역 거주민에게 더없는 편의를 제공하였다. 지형을 이루고 있는 응회암은 암석이라고는 하나 쉽게 깎이는 탓에 거주공간이 좁다 생각될 경우 주변의 돌을 더 파내기만 하면 되었을 뿐 아니라 돌로 만든 집은 여름에는 더위로부터, 그리고 겨울에는 한파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충분히 하였기 때문이다.
지하도시를 이루고 살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버섯집 거주민들은 자신들의 거주지 이외에도 교회와 지성소, 사원들을 만들어냈다. 오늘날까지도 카파도키아에는 600개가 넘는 교회들이 보존되어 있고, 이중 최고 오래된 것은 7세기경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이들 교회를 장식하고 있는 회화들은 비잔틴 예술의 보고라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중요한 유산이다.

 

 

  터키관광에 대한 여행사들의 일반적인 소개

 

1.터기의 볼만한 것들
과거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오스만의 등장 이후 가장 화려한 이슬람 도시로 거듭난 이스탄불, 세계 7대 비경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파도키아 지역의 풍광, 찬란한 에게 문명(고대 그리스 문명)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에게해 연안 지역, 온천과 석회석이 어루어져 기이한 모습을 나타내는 파묵칼레, 햇살 눈부신 지중해의 풍광 등을 일일히 다 쓰려면 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2. 숙소
터키도 관광 국가인지라 웬만한 관광지역의 숙박 시설은 잘 되어 있습니다. 숙박시설은 호텔(터키어로 otel)과 팬션(터키어로 pansyon)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호텔의 경우 지역과 수준에 따라 금액이 많이 차이가 납니다. 팬션의 경우 최저 3YTL(1YTL=약 우리돈 750원)부터 10YTL 정도 수준이구요. (개인적으로 3YTL짜리 같은 걸 권해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각 도시마다 버스터미널(터키어로는 otogar오토가르) 주변에 관광 안내소(터키어로는 Turizm Danisma 투리즘 다느쉬마)가 있습니다. 여기에 가시면 각국 언어로 된 지도와 지역 관광 안내서 등을 얻을 수 있는데, 이거 얻으시면서 넌지시 물어 보세요. 어디에 가야 싸고 좋은 호텔이나 팬션이 있느냐고. 아마 지도에 대충 표시해 주면서 이 근처를 뒤져보라고 얘기해 줄 겁니다. 거기에 가서 조금만 다리품을 팔면 좋은 숙박 장소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 숙소를 고를 땐 가급적 방을 보여달라고 해서 눈으로 확인하고 결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 보여달라고 하고 맘에 안 들어서 다른 데 가겠다고 해서 문제될 것 없으니까요.) 남부 지방(지중해 연안) 지역을 여행하실 때에는 가급적 에어컨(터키어로 klima 클리마)이 있는 방으로 선택하시는 게 좋을 듯... 터키는 기온은 높으나 습도가 낮아서 에어컨의 필요를 못느끼지만(그늘에 들어가 있으면 시원합니다.) 남부 해안은 습도가 높아서 우리나라 여름과 비슷한 지역이 몇군데 있습니다.

 

3. 물가
터키의 화폐 단위는 YTL (예텔레라고 읽습니다. 그냥 리라라고 하는 애들도 있어요.)이며,
1 YTL는 한국돈으로 약 750원 정도 됩니다.
터키는 올해 초에 화폐 개혁을 해서 현재 신/구 두가지 화폐가 통용 중입니다. 구화폐는 TL로 1,000,000TL이 우리돈 750원 정도입니다. 즉,  신화폐는 구화폐에서 0 이 6개가 없어진 지폐입니다.
결론적으로 먹을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 물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내버스와 지하철 요금은 1YTL, 마을버스에 해당하는 돌무쉬는 1.5~1.9YTL, 택시는 우리나라보다 비싼 편입니다. (우리나라 6천원정도 거리가 터키에서는 20YTL정도)
식사는 보통의 경우 3~5YTL 안팎입니다만, 무엇을 먹느냐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그외 우리나라로 치자면 바게트 빵에 해당하는 터키식 빵(ekmek)이 0.3YTL, 과일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수박을 예로 들면 kg당 0.7YTL안팎입니다.
숙박비 역시 호텔(터키어로 otel)과 팬션(터키어로 pansyon) 등 규모와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배낭여행하신다면 호텔보다는 팬션을 많이 이용하실 듯한데, 1인 1박 기준으로 본다면 약 5~10YTL 정도가 될 거라고 생갑이 듭니다. (물론 지역마다 도시 수준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또 하나, 여행을 다니시는 거라면 관광지를 다니신다는 점은 고려하셔야 합니다. 즉, 모든 물가가 조금 비싸다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도 피서 기간에 부산 해운대나 강릉 경포대 물가를 상상해 보세요... 언제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터키는 7~8월이 성수기입니다.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 납니다. (특히 지중해 쪽은....) 그러다 보니 자연 이래저래 물가가 많이 오르는 편입니다.

 

4. 문화와 예의 범절
뭐, 특별한 게 별로 없습니다. 터키인들도 거의 모든 생활 방식이 우리 나라와 다를 게 도 없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나라 예의 범절에 어긋나지 않으면 그 나라 예의에도 맞는 것이 보통입니다. (동방 예의 지국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터키는 인근 유럽 국가들보다는 아시아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런 것들만 신경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터키는 흡연자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큼(맥도날드에도 흡연석 있음.)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반면 부모님 앞에서 담배 피우는 것은 버릇 없는 행동으로 봅니다. 친구의 부모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이구요.
반면 친구가 되는 데에 나이는 의미가 없기도 합니다. (저도 친구들 중에 저하고 10살 이상 차이 나는 친구들 꽤 있습니다. 이 친구들하고는 말도 반말로 하고 술, 담배 이런 거 신경 안쓰고 그럽니다만...) 일단 친해지면 친구인 셈이죠. 이런 부분은 유럽식 사고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터키에서는 부모님과 대화할 때 반말을 합니다. 존대말은 거리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죠.그렇다고 해서 처음보자 마자 친근감을 표현하겠답시고, 반말로 말을 시작하는 것은  싸가지 없어 보이겠죠.
끝으로 이슬람과 관련하여, 이슬람은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한 종교이며 특히 터키인들은 무슬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유 분방하지만 (머리에 차도르를 두른 여성들을 볼 수는 있지만, 법적으로 차도를를 착용하고 학교나 관공서 등에 다니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반면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불쾌하고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잘 모르면서 이슬람에 대해 흠을 잡는다거나 그들의 성지 또는 교회에서 결례가 되는 행동에 대해서는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이슬람 교회에 들어갈 때 짧은 반바지나 민소매 상의로는 출입이 금지되었으나, 요즘은 과도하지만 않으면 입장을 시켜 주기도합니다만.... 그래도 예의는 아니겠죠? 이슬람의 율법대로 하자면 남자고 여자고 무릎, 팔꿈치 위의 살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니까요. (물론 터키의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민소매, 반바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탑에 핫팬츠를 입고 나온 터키 여성들도 무수히 많습니다만... 아이러니한 부분이죠....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그들의 종교도 소중하다고 생각하시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겁니다. 


                      터키 여행사들의 일반적 여행일정


6일 여행 일정

날짜

장소

상세일정

1일

이스탄불

21,000개의 푸른 타일과 6개의 첨탑의 블루모스크.
고대 로마시대 전차 경기장이였던 히포드룸광장.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이집션오벨리스크
세마리의 뱀이 서로 꼬여있는 뱀기둥.
10세기 콘스탄틴 7세에 의해 세워진 석회석의 콘스탄틴기둥.
독일 황제인 카이세리빌헬림의 분수.
교회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던 성소피아 서원.
메두사의 머리가 거꾸로 박혀있는 지하 저수지 예레바탄 사라이.
오스만 제국의 위대함과 강한 힘을 느낄 수 이쓴 톱카프궁전.
호텔투숙 .

2일



이스탄불



유럽과 아시아를 야분하는 보스포러스.
이스탄불 중에서 가장 번화한 터키의 명동 탁심광장
오래된 전차가 다니는 이스티크랄 거리.
오토만 르네상스 양식의 돌마흐체궁전.
서민의 시장 이집션과 그랜드 바자르.

19:00 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로 이동.

3일

 

카파도키아

 

낙타바위가 이쓴 데블랜드 계곡.
계곡에 위치한 종합도시인 젤브야외 박물관
시몬의 수도 교회가 있는 파사뱌계곡
터키에서 제일 긴 강 크즐르막강변에 위치한 아바노스
도자기 마을.
성 바실 주교의 수도원시설과 30개의 교회가 있는 괴레메박물관
히타이트 시대때 천연요새였던 우치히사르
호텔투숙
선택사항:밸리댄스와 열기구 비행
강추:동굴호텔

4일

 

카파도키아

 

로즈발리(4km하이킹) 카파도키아의 놀라운 자연과 함께 여러 교회들과
수도원들 크리스트교 성직자들의 교회와 집들로 유명한 곳인
챠우신 마을
비둘기 채변을 모아서 포도밭 거름으로 사용했기도 했던 비둘기계곡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이며,무려 36개의 지하도시가 있는
지하동굴도시.
크리스트교인들의 피난처로 사용되었고 오렌지를 저장하는 저장고가
있는 오타히사.

20:00 버스를 타고 파묵칼레

5일






파묵칼레
셀죽 또는
쿠사다시




 페르가뭄 텔레포스의 아내 히에라를 기념하기 우해 만들어진 도시
 히에라폴리스
 A.D2세기 하드리안 황제때 지어져 15,000명을 수용할 수있는 원형극장
 온탕과 냉탕을 갖춘 로마 목욕탕.
 1200개의 석관이 있는 공동묘지.
 우상숭배자들에게 매를 맞고 숨진 빌립사도의 순교 교회
 목화성란 뜻을 갖고 있는 파묵칼레
 17:30 버스를 타고 쿠사다시 또는 셀죽으로 이동
 호텔투숙

6일







에페소







 헬라어로 '인내'란 뜻의 가진 에페소
7대불가사의 중에 하나이며 24개의 유방을 가진 아르테미스 신전
에페소 고대도시.
개점을 알리는 해시계와 물시계가 있는 아고라 시장터
24,000명을 수용할 수있는 원형극장
문화적인 건무로 에페소를 대표하는 셀수스 도서관
남자들만 출입이 가능했던 공중 화장실 등등
마리아가 마지막 일생을 보낸 곳 성모마리아의 집
 20:00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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